HCI Column


UX 전략 분석:

소니는 왜 몰락했는가?

최준호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UX랩 교수

김병준

SK 경영경제연구소 HCI/UX랩 수석연구원





가전제국의 패망기

닷컴 버블이 붕괴된 직후인 2001년, “미래의 브로드밴드 네트워킹은 더 고도화될 것이다. 우리는 기기와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다” 향후 10년의 ICT 산업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 같은 근사한 이 말은 어느 회사의 누가 했을까? 그리고 그 회사는 10년 후 어떻게 됐을까?

2001년 같은 해에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와 소니의 CEO 안도 구니다케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과 자사의 역할에 대한 비전을 각각 피력한다. 2001년 1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른바 ‘디지털 허브 전략’을 공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컴퓨터는 생산성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의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맥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허브가 될 것입니다.”

같은 해 11월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에서 소니의 안도 구니다케는 근본적으로 애플의 디지털 허브와 같은 의미인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 전략에 대해 발표한다.

“다가오는 브로드밴드 네트워킹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소니는 기기와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를 만들 것입니다.” 용어는 디지털 허브와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로 서로 달랐지만, 사실상 디바이스-콘텐츠-서비스의 융합 플랫폼화를 의미한 것으로 같은 뜻이었다.

그러나 10년 후 양사의 실적은 극적으로 대비되어 나타난다. 2001년 이후 애플은 컴퓨터(아이맥), MP3 플레이어(아이팟), 휴대전화(아이폰), 태블릿PC(아이패드), TV셋톱(아이TV)에 이르는 기기 포트폴리오와 애플리케이션(앱스토어), 음악과 영상(아이튠즈), 출판(아이북스), 클라우드 서비스(iCloud)를 아우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융합 플랫폼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반면 소니는 주력 제품이었던 TV에서의 선두 지위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넘겨주었고, 자신들이 창출한 휴대용 음악 기기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미미하다.

소니의 몰락은 애플의 성공만큼이나 극적이며, 과거 소니가 출시한 혁신 제품들과 가전제품 분야에서 구축한 브랜드 가치를 경험했고 기억하는 이들에겐 믿기 힘든 경영 실패 사례이다. 애플의 아이팟(2001) 출시 22년 전인 1979년 소니의 워커맨은 휴대용 음악 기기의 혁신과 새로운 모바일 사용자 경험을 창출했다. 소니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트렌드를 선도하며 소형화된 디자인과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AV, 카메라, 게임기, 컴퓨터 등 다양한 가전제품군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다.

경영 전략 측면에서 소니는 미디어 디바이스 제품군에서 구축한 경쟁우위를극대화하기 위해 컬럼비아 영화사(1988), CBS 레코드(1999) 등을 인수하며 콘텐츠 산업과의 수직적 통합을 시도하는 컨버전스 전략을 보여 주기도 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제품군을 형성했으며, 컨버전스와 이에 기반을 둔 생태계 구성이라는 스마트폰 환경에서의 특징을 앞서 보여 주는 선도적인 사례를 창출했다. 에릭슨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01년 휴대전화 산업에도 신규 진출해 스마트폰 혁명에 대응할 기회를 선점하기도 했다.

2001년 당시 애플과 소니의 미래를 예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 누구나 주저없이 소니의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을 것이다. 당시 애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회사로, 브랜드 가치는 높았지만, 보유 제품의 시장 점유율은 턱없이 낮은 회사였다. 컴퓨터 제품, 맥 OS와 몇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애플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굳이 더 찾는다면 건방진 스티브 잡스라는 애송이 CEO였다).

반면 소니는 음악과 영화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고, TV와 PC, 게임기, 휴대전화에 이르는 모든 기기상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컴퓨터가 디지털 허브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장황한 설명해야 했던 반면, 안도 회장은 소니가 가진 제품 및 서비스들을 연결하겠다는 말만으로 자사의 전략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 후 애플이 세계 1위 시가총액의 회사로 발돋움한 반면, 소니는 아마도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여겨질 정도로 몰락했다. 주목할 점은 두 회사 모두 비전 있는 경영자, 기술적 혁신 능력, 디자인 능력,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경쟁전략 상의 유사성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극과 극을 나타내는 실적을 보이게 되었다는 점이며, 여기에 UX 전략 분석의 의의가 있다. 그렇다면, 소니의 몰락 이유를 하나씩 검토해보자.


무엇이 문제였을까?: 기술 혁신? 디자인 역량?

소니 몰락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은 우선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기술적 혁신능력과 디자인 역량을 살피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소니는 수많은 혁신상품을 끊임없이 시장에 출시해 온 혁신 기업이다. 트랜지스터 라디오(1955), CR(1971), 워커맨(1979), CD플레이어(1982), 핸디캠(1989)을 ‘세계 최초로’ 출시했으며, 이후로도 초소형 HD캠코더(2005), 블루레이(2006), OLED TV(2007), Netbook(2009) 등을 세계 최초로 시장에 내놓았다. AV 및 엔터테인먼트 제품 부문에서 소니는 최고의 일가를 이뤘으며, 현재에도 최고의 기술 장인들을 보유한 채 쇠퇴는 했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TV 기술 측면으로 보자면, 소니가 삼성이나 LG보다 못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디자인과 관련해서도 소니는 최고의 역량을 갖춘 회사로 꼽을 수 있다. 1959년에 출시된 소니 포터블TV 80301과 1979년 출시된 워크맨은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이었고, 그 외 많은 제품에서 ‘소니 디자인 센터’의 명성은 이어졌다. 최근에도 2009년 ‘레드닷 어워드’에서 16개 제품이 수상하고 2012년에도 엑스페리아 제품이 수상하는 등 해마다 주요 디자인상에서의 수상을 놓치지 않고 있다.

즉, 소니는 세계 최고의 수준의 디자인이라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소니의 스마트폰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라면, 갤럭시의 디자인이 엑스페리아의 디자인보다 좋다고 쉽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기술 및 디자인 역량 면에서 소니는 매우 우수한 내부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몰락의 원인은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조직, 문화, 전략?

다른 이유들이 사내외에서 소니 몰락의 원인으로 이미 검토된 바 있다. 2005년 최초의 외국인 회장이었던 하워드 스트링어는 폐쇄적인 조직구조, 너무 광범위한 제품군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에 역량 분산, 제품간 호환성 미흡이 소니의 문제라고 결론내렸다.

한편 산업분석가들은 소니가 애플 등과 달리 플랫폼화에 실패해서 몰락했고, 사업부 사이의 갈등과 자사 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폐쇄적 조직 문화가 원인이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다들 그럴듯한 설명이기는 하나, 사후적 해석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가령 소니의 조직간 갈등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플레이스테이션 그룹이 다른 계열사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PSP용 영화 서비스 계획을 스스로 포기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구글은? 구글의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은 왜 부각되지 않는가? 독선적일 정도로 비쳐지는 애플의 고집은 어떠한가? 자사 기술 및 디자인에 대한 집착과 폐쇄성 측면에서 애플이 소니보다 낫다고 볼 수 있을까?

역량 분산이 문제라면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콘텐츠를 함께 추구하는 애플의 성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니가 플랫폼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현재의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설명은 어느 정도 옳다. 또한 조직내 갈등이나 자사 기술에 대한 집착 등의 다른 주장들 역시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니의 핵심적인 문제를 이해하려면, 소니스스로도 자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이미 노출된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바꿔 말해, 그간 플랫폼화를 노력했음에도 이를 달성할 수 없었던 이유, 조직내 갈등과 기술에 대한 집착을 가져온 이유를 살펴봐야만 본질을 볼 수 있다.


숨겨진 문제: 사용자 접점 포인트와 UX 관점의 부재

소니 몰락의 원인은 아마도 과거의 ‘성공 경험’ 자체일 가능성이 높다.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그에 맞는 경쟁우위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것이다. 소니가 급성장한 시기는 2차 대전 후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시기로서 ‘제품을 만들면 팔리는’ 시기였다. 제조사 시각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면, 틀림없이 시장 수요가 존재해 팔리는 것이 보장되는 시기, 다시 말해 Supply Push 전략 시기였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시장은 소비자 주도의 Demand Pull 시기로 전환됐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전제로 한 공급 측면의 전략이 Demand Pull 시기의 경쟁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니의 혁신 전략은 공급자 측면의 혁신 즉, 기술 혁신에 국한되며 디자인 역시 사업자 관점에서 바라본 ‘미’를 구체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UX 관점에서 — 바꾸어 말해 Demand 관점에서 — 소니 제품은 뛰어난 기능과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만족도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 이유는 (기업 관점에서 바라본) 개별 제품 자체의 성능과 디자인은 훌륭하지만, 사용자가 직접 제품 혹은 서비스와 소통하는 접점의 UI가 사용자의 요구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소니

스스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하는 기업이기를 희망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경험하는 통로, 즉, 소니의 제품과 서비스를 넘나드는 ‘접점’을 구축하고 원활히 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소니는 플랫폼화가 다른 기업 및 고객이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에 용이하게 접근하게 하는 행위로부터 출발함을 깨닫지 못했다. 때문에 제품 자체의 UI는 훌륭해도,

고객이 기업과 대면하는 지점의 경험은 한없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례로 소니의 ‘Xross Media Bar(XMB)’ 인터페이스를 들 수 있다. 소니는 이 걸출한 UI를 2003년 PSX에서 선보였고, PSP, PS3, 브라비아 HDTV나 자사의 카메라 및 VAIO노트북에 사용하여 사용자에게 일관된 UI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Life Style에 일관된 흐름을 나타내는 Coherent한 수준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처음의 논의로 표현하면, 공급자와 디자이너 관점에서 일관성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사용자 관점에서의 일관성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과 부진을 겪으며 새로 내세웠던 소니의 UX 전략은 ‘One Sony’였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통합’도 제조사 입장에서의 Consistency에 해당하는 통합성이지, Coherence에 해당하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의 통합성으로 고도화되지는 못했다.


소니의 사례로 답하는 UX 경영 전략

소니는 공급자 관점에서만 혁신을 해석하고, 디자인적 완성도를 추구했던 회사였다.

Supply Chain은 잘 갖추었으나, 사용자 접점의 구축에는 미흡했던 회사였다. 공급 측면에서의 융합은 이뤘으나, 사용자 가치의 통합에는 미흡했던 회사였다. 이러한 문제 인식의 반증으로 소니는 2011년에야 경영진 개편시 통합 UX부서와 CXO(Chief Experience Officer) 직책을 신설했다. 수요자 주도 시장, 플랫폼 환경에서 UX 기반 경영전략의 요체는 기술 혁신, 디자인 혁신이 아닌 ‘사용자 경험’의 혁신이다. 아직 사용자 중심의 가치 내재화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려운 한국의 기업들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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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pf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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