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네트워크 그리고 사용자의 경험

천영준 연세대 기술경영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빅데이터는 최근 IT 업계 최대의 화두다. 정부 정책에서도 빅데이터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인자가 될 것으로 손꼽힌다. 산업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학자들도 넘쳐나는 데이터의 바다 안에 무언가 답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몇몇 사람들은 지리정보나 공공정보와 같이 상업적 가치가 분명하지 않았던 데이터 자원을 통해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인류의 행동 패턴과 시장의 진화 방향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반면에 빅데이터 자체가 정치적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진영은 빅데이터가 일종의 낭만적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애초부터 데이터는 방대하게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서 의미를 추론해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사회과학 연구에서 말하는 ‘샘플링 테크닉’과 ‘연구방법론’에 대한 확실한 기초를 지니고 있으면 데이터를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제품을 개발하거나 시스템을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살펴보기 위해 SNS를 들여다보는 일 같은 경우에도 대상이 온라인 공간으로 바뀌었을 뿐,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역학 구조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HCI 전문가들은 ‘빅데이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이 분야를 학제적으로 어떻게 정의해야만 할까. 오랫동안 경험과 인간의 의사결정, 그리고 기술의 이용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고민해 왔던 HCI 전문가들은 넘쳐나는 데이터의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빅데이터는 ‘경험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에서부터 

빅데이터 전문가들이 열심히 파고드는 분야가 있다. 바로 네트워크 분석 방법론이다. 친구들 간의 연결, 도시 간의 연결, 뇌 내부의 인지 영역 간 연결 등 다양한 관계를 노드(node)와 링크(link)의 입장에서 보는 시도다. 2010년대부터 이 산업에서 열심히 매달리고 있는 것이 트위터를 통한 여론 조사나 시장 분석이다. 이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사용자, 사회학에서 말하는 행위자 간의 네트워크다. 특정 공간 안에서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은 어떤 그룹을 짓고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이다. 많은 빅데이터 컨설팅 방법론이 네트워크 분석 모델을 일종의 패키지처럼 구조화해놓고, 마치 기존의 비즈니스 컨설팅이나 디자인 분야에서 하기 어려운 분석 모델인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빅데이터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들조차도 이러한 트렌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각광받는 다음소프트 부사장인 송길영 박사는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맥락이 중요한데, 지금껏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원들의 가치에만 주목해 왔다.”며 빅데이터 신드롬에 경종을 울린다. 데이터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사고방식(mind), 그리고 근원적인 욕망(desire)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찍이 철학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심리학의 원조로 칭송받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그의 말년 연구에서 ‘경험 간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수많은 경험은 독자적으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서로 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의의가 뚜렷해진다는 주장이다. 이를 HCI적으로 번역해보자. 누군가 트위터를 통해 연인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고 할 경우에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서로가 온라인 공간에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연인이 위치한 물리적 환경도 소통 과정에 중요한 변인으로 작용한다. 그와 그녀가 좁은 골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는지, 아니면 각자 침대 속에서 모바일 폰으로 밤에 대화를 나누는지 등의 실제 맥락이 ‘관계된 경험’의 인자로 작용한다. 그들 간의 대화를 지켜보는 외부인들의 경험도 중요한 변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그 상황을 관찰하면서 ‘아, 닭살돋아’, ‘아 부러워’ 같은 멘트를 하면서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결국 제임스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서로 엮여 있음을 일찍부터 이야기한 셈이다.

데이터 자체에 의의를 두는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이 어떤 인구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그들의 대화 빈도수가 어떤지, 시간에 따라 그 흐름은 어떤지를 발견하는 것 자체에 무게를 둘 것이다. 이것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행동의 배경에는 어떤 심리들이 숨어 있는지 배제해 버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데이터는 그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남긴 인간의 경험과 맥락이라는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 분석을 하는 HCI 전문가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데이터를 위해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라

결국 빅데이터는 인간의 경험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실마리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인지과학 문헌들과 연구들이 있지만 사실 2차 데이터의 향연과 인간의 행동/심리 사이에 뚜렷한 연관관계를 제시한 결과는 많지 않다. 요즘 들어서 행동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일부 이론 분파에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실험과 설문을 통해 특정한 사람의 인식을 보는 미시(micro) 분석가들과, 2차 자료를 통해 사회의 거대한 패턴을 보는 거시(macro) 분석가 양 진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히도 오래전부터 사람의 욕망과 인식을 다루어 온 인문학에 실마리가 있다. 특히 인류가 관념화하고 발전시켜 온 종교 철학에 많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가령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사용자의 글만 댓글이 많이 달리고, 주목받는 현상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1940년대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성경의 마태복음에서 그 비유를 빌려와 ‘마태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옛날 외지를 여행하러 나섰던 대 상인이 하인 3명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돈을 운용하고 관리해서 자산을 불릴 것을 당부했는데, 나중에 보니 어떤 하인은 10배의 실적을 거뒀지만 어떤 하인은 땅에 묻어두고 모른 체했다는 이야기다. 대상인은 가장 모자란 하인의 몫까지 전부 빼앗아서 높은 성과를 거둔 하인에게 줘버렸다. 일종의 승자승 원칙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사용자들에게 주목받는 제품이 제한적이라거나, 오피니언의 쏠림 효과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효과의 프레임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와해되는 일시적 조직화(temporary organizing) 현상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과거 프리챌이나 다음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한 달 만에 흥했던 공간이 몇 주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불교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라고 말한다.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진리를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지만, 결국 무량무변이라는 말조차도 절대적인 경지가 있다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대승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법화경에서는 ‘화성유(化城喩)’를 통해 부처가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로 만들어진 성을 짓는 이야기를 제시한다. 오랜 수행 동안 힘들어하던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큰 성을 짓고 그 안에 금은보화를 축적해서 몇 년 살게 하다가, 그들이 바니타스(Vanitas), 즉 허무함에 빠지자 바로 없애버리고 모든 현상의 일시적인 본질을 말했다는 비유다. 한때 온라인 네트워크 이용자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이야기한 사상가도 있었듯, 온라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한다. 데이터의 흐름만 보면 단순히 이용자가 늘어났다 빠졌다 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질을 다룬 고전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미래가 확연히 보인다.







Posted by kipf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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