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이 있어야 ‘사용 경험’이 있다: 교보문고의 고민

최준호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김병준 SK 경영경제연구소 UX/HCI 랩장


애플의 성공 이후로 UX는 ICT 시장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성공을 일구는 ‘마법의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UX가 제품 프로세스 전반에, 그리고 조직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그만큼의 책임 또한 요구받게 되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행 UX’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 본다. 이미 기획되어 개발 과정에 있는 제품(서비스)의 ‘개선’보다는 시장 자체를 형성할 어떤 것, 인간의 욕망을 가치로 전환시킬 구체적인 과제를 UX가 떠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보고, 국내 전자책 사례연구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선행 UX가 중시되는 시대에 이르러 1) UX 실행에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2) 기업 경영자가 UX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3) ‘선행 UX’가 중요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국내 전자책 단말기 UX에 대한 평가

우선적이고 자연스러운 비교는 종이책과 비교하는 것이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기에 이는 정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감성 부문의 경우, 종이책이 월등함을 쉽게 알 수 있다. ‘북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음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종이책은 책 표지에서 차례, 내용, 서체, 문단, 그림 등의 측면이 정교하게, 완성도 높게 디자인되어 있다. 반면 전자책은 책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에 급급한 형편이어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기 무색할 정도이다. 당연히 전자책은 종이책의 자연스러움을 제공하지 못할 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종이책의 ‘손넘김의 감촉’을 제공할 수 없다.

사용성 측면에서 보면 각각의 장점이 엇갈린다. 전자책은 가볍고, 휴대성이 높으며, 폰트와 글자크기, 줄간격, 문단간격, 여백 등의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평가하기 망설여지는데, 종이책의 경우 이 모든 요소들을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독자를 위해 최적의 형태로 구성해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용성

측면에서 전자책은 대개 형광펜 기능, 국문/영문 사전기능, SNS 공유기능 등을 제공하는데, 이는 참고서가 아닌 바에야 그리 핵심적이지 않은 기능에 불과하다. 따라서 종이책에 비해 많은 기능을 제공한다 해도 그것이 사용자 입장에서 크게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점에서 평가가 엇갈릴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비교 가능한 것은 동종의 레퍼런스급 전자책 단말기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단말기로 아마존에서 출시한 ‘킨들 페이퍼화이트(Kindle Paperwhite)’의 UX와 비교해볼 수 있다. 킨들 페이퍼화이트는 국내 전자책 단말기와 마찬가지로 이잉크(e-ink) 기반의 전자책(eBook) 전용 단말기이며 화면 크기도 같다. 태블릿급 킨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가격대와 사용목적의 측면에서 국내 전자책 단말기와 다른 시장을 형성하는 제품이라 보기 때문이다.

킨들은 국내 전자책 단말기에 비해 월등한 UX 품질을 보여준다.

• 화면(액정) 품질이 월등하다. 훨씬 밝고, 여백과 글자가 더 또렷하게 나타나 종이에 인쇄한 것 같은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화면반응 역시 빠르며, 세밀하고, 명암비가 뛰어나다.

• 놀랍게도 무광으로 된 액정 표면의 촉감이 종이책과 유사하다. 강화유리로 처리되어 유리의 느낌을 그대로 주는 국내 전자책 단말기와 차이가 난다.

• 조작이 직관적이고 적절한 기호와 아이콘으로 뒷받침되어 혼동되지 않고 비교적 정확한 조작이 가능하다.

• 잘 짜여진 튜토리얼을 제공한다. 단말기기를 통한 책 구매, SNS 활용, 사전 활용 등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상대적으로 조작하기 편리한 형태로 제공된다.

• 샘(SAM)의 가격은 149,000원, 킨들의 가격은 139달러이다.

UX에 대한 불만, UX 디자이너에 대한 불만 앞에서의 평가 내용에 근거하여 해당 제품의 UX 디자이너에게 많은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허접한?) UX의 디바이스가 개선되지 않은 채, 출시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결점들은 정말로 UX 디자이너가가 노력을 해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용성을 개선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인식할 것은 독자들이 전자책 단말기를 외면하는 것이 단말기의 사용성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약간 과장해서 설명하면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의문, ‘전자책 단말기가 과연 소유하고 사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즉, 유용한 제품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국내

전자책 시장의 한계를 고려하면 전혀 다른 ‘뷰(view)’가 보일지 모른다.


왜, 국내에서 전자책 사용은 이토록 불편한가?

국내에서 전자책 사용이 불편한 이유는 시장이 영세하여 보다 나은 단말기를 만들 재원이 부족한 데 기인한다. 또한 시장이 영세한 것은 국내 전자책 시장의 출판사와 유통사가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고, 유통사간에도 서로 다른 DRM을 채택하여 시장이 파편화된 데 기인한다.

특이하게도 국내 전자책 시장에서는 출판사와 유통사가 서로 다른 DRM을 부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출판사 62개가 모여 결성한 콘텐츠 애그리게이터(Content Aggregator)인 한국출판콘텐츠(e-KPC)는 국내서는 마크애니 DRM을, 번역서는 어도비 DRM을 사용한다. 유통사의 경우 교보문고는 파수 DRM을, 영풍문고, Yes24등 그 외 유통사(한국이퍼브)들은 한글과컴퓨터 DRM 등을 사용한다. 전자책 서재와 뷰어의 경우에도 표준이 나뉘어 한국이퍼브는 공용 서재와 크레마 뷰어를, 교보문고는 전용 서재와 뷰어를 사용한다.

DRM의 중복과 파편화의 결과로 전자책 단말기의 반응 속도가 저하되고 소프트웨어 설계의 복잡함이 초래된다. 시장 파편화의 결과로 어느 한 출판사도 10만권 이상의 규모를 갖추지 못하게 되어 기기사가 요구하는 수익 규모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콘텐츠 판매 수익을 나눌 수 없다보니 결국 기기사는 ‘원가 이내의 제품’을 납품하고 질 나쁜 액정 패널과 물리적 버튼, 배터리 등을 불가피하게 탑재한다.

149,000원과 139달러라는 비슷한 가격대의 국내 전자책 단말기와 킨들 페이퍼 화이트가 이토록 상이한 UX 품질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 국내 전자책 단말기의 콘텐츠는 부족하고 제한이 많은가?

사용자 관점에서 전자책이 유용한지 의심이 드는 두 번째 이유는 좋은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출판사들이 자신이 보유한 도서를 전자책으로 전환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사 입장에서 전용 단말기 보급에 한계가 있으니 아무리 팔아도 5만 권1 이상의 판매를 기대할 수 없다.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데에는 추가적인 품과 비용이 드는데,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비용을 상쇄시킬 수 없다. 구체적으로 연봉 4,500만 원 이상의 고급 인력2 2인 이상을 두어야 하는 전자책 사업에 출판사가 기대할 수 있는 바가 거의 없는 것이다.

전자책 콘텐츠가 적은 두 번째 이유는 외국 번역서와 관련된 것이다. 국내 연간 출간 종수 약 4만 권의 32%가 번역서이다. 매출 비중으로는 전체 도서 매출의 60%를 상회한다. 이러한 번역서는 전자책 출간 계약이 어렵고—전자책은 불법 복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복잡한 계약서에 오랜 협상 기간을 요한다— 비용을 맞추기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아마존의 성공 경험을 갖고 있어 외국 출판사의 경우 국내 상황을 도외시하고, 전자책을 종이책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볼 만한 많은 번역서들이 전자책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앞서의 질문을 상기해보자. 전자책 단말기 UX의 열악함은 많은 부분이 DRM 파편화와 시장의 영세성에 기인함을 알았다. 이에 맞춰 다시 생각하면 국내 전자책 단말기 UX의 부족함이 UX 디자이너가 역량이 부족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인가?


UX 디자이너의 응답: 어쩌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UX 부서의 사내 역할과 위상에 달려 있을 확률이 높다. UX 부서의 역할이 제품의 사용성 평가와 개선에 맞춰 있다면 이 문제는 다른 부서(기획, 기술, 마케팅 등)에 기인한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UX의 역할이 선행 UX 쪽으로 이동 중이고 경영 전반에 UX가 깊이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이 문제는 더 이상 남 탓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UX가 책임지는 범위가 사용성뿐 아니라 유용성에도 관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UX가 유용성 문제에 대한 책임을 나누게 되면 UX의 필요 역량과 역할 또한 크게 변한다. 구체적으로 UX 디자인을 위해 관여해야 할 대상이 제품 자체만이 아닌 경영 전반의 사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UX는 국내 전자책 시장의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든 타개할 ‘비책’을 디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행 UX 환경에서의 UX 전략

이제 이 글을 시작하면서 제기했던 질문들에 답을 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선행 UX가 중시되는 시대에 이르러

1) UX 실행에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UX가 기존 제품의 개선이 아닌, 새로운 제품 경험의 기획과 창조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사용성을 넘어 유용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맡게 된다. 이는 전통적인 제품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기업경영 수준에 한층 가까이 가게 됨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기업이 제품과 관련하여 직면한 난제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의 해결방안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2) 기업 경영자가 UX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이다. 달리 말해 혁신이다. 사실 대개의 경우 (대기업일수록) 사용성 개선과 관련한 문제에 경영자는 관심이 없다. 이는 실무의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잘 해낼 것이라 믿고, 잘 해낼 것을 기대한다. 사용성 측면에서 큰 업적을 세운다 해도 경영자가 이를 인식하고 감동할 확률은 매우 적다(물론 CEO가 스티브 잡스라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유용성 측면에서 업적을 세운다면? 아마 UX는 회사의 ‘영웅’이 되어 있을 것이다.

3) ‘선행 UX’가 중요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UX가 ‘유용성’ 문제에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경영자는 UX 부서에게 경영상의 중요한 문제에서 손을 떼고, ‘아트와 관련된 일에나’ 신경 쓰라고 할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UX 부서는 유용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답을 제시할 역량을 내재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경영 상황과 활용할 수 있는 경영 자원을 파악해야 하며, 기존에 도외시했던 ‘숫자’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들 문제와 관련 회사의 기존 직원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움을 얻는다면 그건 운이 좋은 때일 것이고, 대개의 경우 사내 정치를 고려하면 UX 부서의

무능력을 경영자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상으로 국내 전자책 단말기 사례를 예로 UX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이를 타개할 조건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국내 전자책 시장의 문제는 ‘사용경험’을 가져올 ‘사용’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UX가 이를 타개하려면 유용성에 대한 해답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UX의 위상이 커질수록 직면해야 할, 따라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더욱 늘어나는 법이다.







Posted by kipf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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